시드니 여행 7일 차 아침이 밝았다.
이제 여행의 2/3 가 지난 셈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게 너무나 아쉬울 뿐이어서 시드니를 떠나는 날에는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다이 비치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메인 일정은 본다이 비치에 가는 것 하나였고 가서 무얼 할지, 어디를 더 가볼지 등은
그때그때 상황을 보아 가며 정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본다이 비치
주말이 되면 시드니 도심은 확실히 평일에 비해 한산해진다.
지난 주말 처음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처럼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의 조합으로 본다이비치에 가기로 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마틴 플레이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마틴 플레이스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본다이정션(Bondi Junction)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본다이 비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출발한 지 30분도 채 안 됐는데 벌써 도착이라니
시드니 도심에서 출발해 이렇게 쉽게 세계적인 비치에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비치 쪽은 너무 뜨거울 것 같아 일단 본다이 비치 뒤쪽으로 펼쳐진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동으로 누워서 바라보게 된 하늘과 바다는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다 보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비치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중 사람 많고 분위기 좋은 곳에 들어가서 먹기로 하고 점심 장소를 찾아 나섰다.
우리가 점심 식사를 위해 찾은 곳은 Promenade at Bondi Beach라는 곳이었다.
리뷰도 좋은 편이었고 외관상 가장 본다이 비치의 시끌벅적하고 신나는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 들어가게 되었다.
늘 그랬듯 우리는 테라스 석에 앉았는데
우리가 앉았던 테라스 자리에서 작은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본다이비치였다.
비치사이드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됐으니 또 못 참는 메뉴인
피시 앤 칩스와 맥주, 그리고 피자를 주문했다.
비치에 오면 피시 앤 칩스가 진리인 건가...
왓슨스 베이에서처럼 우리 가족 모두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바다에서 수영은 못하더라도 본다이 비치까지 왔으니 물에 발이라도 담가 보기 위해 비치로 향했다.
비치에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일광욕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와... 햇볕은 뜨거운데 얼굴에 닿는 바람은 청량했고
속이 뻥 뚫릴 듯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긴 해안선의 풍경은 압권이었다.
서퍼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본다이 비치답게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파도가 꽤 센편이어서 해변에 닿을 때 까지도 파도의 힘이 살아 있는게 느껴졌는데
정말 서핑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듯 싶었다.
쪼쪼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어 다닐 때 발에 모래 묻는 걸 질색했었는데
본다이 비치에서는 유독 부드러운 모래의 느낌에 맨발로도 잘 뛰어다녔다.
새하얗게 부서져서 밀려오는 파도도 뛰어 넘어보고 모래사장도 거닐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웨스트 필드 본다이 정션 - ANITA 젤라또
본다이 비치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본다이 정션으로 향했다.
본다이 비치에 오는 길에 보니 본다이 정션쪽 거리의 분위기가 꽤 좋은 것 같아
돌아가는 길에 근처 구경도 하고 쇼핑몰에도 들러 보기로 했다.
시드니의 경우 비치에서 가까울수록 집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본다이 비치 근처 동네들은 여유로운 부촌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많았다.
시드니 여행 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쇼핑도 할 겸
본다이 정션에 있는 웨스트 필드로 들어갔다.
씨티에 있는 웨스트 필드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 붐비지 않아 쾌적한 느낌이었다.
웬만한 명품 브랜드의 샵은 거의 있었고 COS, ZARA 등의 SPA 브랜드 샵들도 눈에 띄었다.
여기서 뭐 하나 건져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쇼핑을 시작해볼까 했는데 쪼쪼가 다리도 아프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하는데 쇼핑몰 안에 적당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근처에 젤라또 가게는 있을 것 같아 찾아보니 웨스트필드 쇼핑몰에서 걸어서 1분거리에 유명한 젤라또 맛집이라는
ANITA gelato 아니타 젤라또가 있다길래 쇼핑은 접어두고 웨스트필드 밖으로 나왔다.
ANITA gelato는 매장 내부 인테리어도 블링블링 예쁘고, 젤라또도 맛있었다.
시드니에 와서 첫번째 젤라또는 그 유명한 Messina 메시나 젤라또에서 먹어 보았고,
ANITA가 두번째였는데 내 입맛에는 Messina가 훨씬 더 달콤쫀득 맛있었다.
아니타 젤라또 본다이 비치점은 항상 대기가 길다고 하는데,
이 포스팅을 보는 분들은 본다이비치점 앞에 줄서지 말고
본다이정션 웨스트필드 바로 앞에 있는 아니타 젤라또로 가서 대기 없이 젤라또 즐길 수 있기를...
패딩턴 Paddington - Civico 47(강력 추천 이탈리안 레스토랑)
패딩턴이라는 동네는 이 날 처음 와 보았다.
본다이 정션 근처 동네 분위기가 좋아서 쭉 산책해 보고 싶은 마음에
저녁 장소로 생각해 둔 30분 거리의 패딩턴까지 걸어가기로 했고,
패딩턴에 도착했을 무렵은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런데 이 동네를 걸으면서 불현듯 '왜 여기를 여행 막바지인 오늘에야 온거지' 하는 후회 섞인 불안감이 엄습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여행 중 하루는 오롯이 이 곳에서 보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디하면서도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동네였다.
낮에는 있어보지 못했지만 해질녘부터 밤까지의 분위기는 공기마저 로맨틱한 느낌이었다.
저녁 식사 장소로 생각해 두었던 곳은 Ursula's Paddington 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한국인들에게도 나름 많이 알려진 곳이었는지 우리가 방문했을 때 1층 테이블에서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한국인들이 꽤 있었다.
예약이 이미 꽉 찬 상태라 워크인으로 들어가 식사하기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보기 위해 2분 남짓 걸어가다 보니
맞은 편 거리에 또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보였다.
Civico 47.
이때만 해도 패딩턴이라는 동네에 있는 이 아담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우리 가족의 인생 레스토랑이 될 줄 몰랐었지.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 Civico 47이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예약 없이 왔는데 저녁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다행히도 가능하다고 했고, 들어가면서 구글 평점을 찾아 보던 남편은 평점이 4.9라며 놀라워했다.
레스토랑 내부는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벽에 걸려진 그림들과 테이블마다 놓여진 램프가 레스토랑에 고상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나만의 추측이지만)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보니 연인, 가족과 함께 특별한 날을 맞이해
캐쥬얼하지만 또 마냥 안꾸미고 온 건 아닌, 조금은 신경 쓴 차림으로 온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이 오리 고기 요리, 생선 요리, 파스타,그리고 와인을 주문했는데
세가지 디쉬 모두 맛도 디스플레이도 훌륭했다.
- Dry aged duck - witlof - mandarin dressing - mizuna
- Fish fillet - cauliflower - sweet chilli - mint
- Mafalde - red royal prawn - bok choy - preserved lemon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재료인데 그 재료들로 이런 맛을 낸다는 게 놀라웠다.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여지껏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터치가 가미되어 있는 맛이었다.
조금 밋밋한가 싶다가도 먹다보면 입안에 남는 감칠맛까지 이 곳에서는 음식을 즐긴다는
느낌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사진도 함께 포스팅하고 싶지만 먹는 데 집중한 나머지 사진을 남기지 못한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부분이다.
구글 평점 4.9가 너무나 이해가 가며 맛과 분위기 모두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은 레스토랑이었다.
특히 남편은 이 곳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번 더 찾아와서 그때는 코스요리를 먹어보자고 제안했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고, 우리가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는 화요일 오전 비행기였으므로
다시 올 수 있는 날은 월요일 뿐이었는데 마침 매주 월요일은 휴무라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드니에 와서 인생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 된 셈이었다.
(물론 시드니에 또 오게 된다면 이 곳을 꼭 다시 찾아오긴 하겠지만...)
우리는 너무 아쉬운 나머지 테이블 담당 서버에게
Civico 47의 음식, 분위기, 서비스 모든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며
혹시 시드니에서 이 곳과 비슷한 느낌의 추천할 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는지 물었다.
친절한 서버분은 잠시만 시간을 달라며 쉐프와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본 후
3군데의 추천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름을 메모해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잃어버릴 세라 고이 사진까지 찍어두었던 추천 레스토랑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한국에 와서도 한번씩 생각나는 패딩턴이라는 동네와 Civico 47.
다음번에 시드니에 오게 된다면 패딩턴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그날 저녁에는 Civico 47에서 또 한번의 훌륭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